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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충고하는 자세

by new-info-spring 2025. 6. 8.

인이란 무엇인가

 

논어에는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인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인이란 유가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이지만 명확하게 정의해 주지는 않아서 많은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을 했는데 공자는 그때마다 각 제자의 수준과 성향에 맞추어 다르게 대답을 해 줬다.

공자는 자공에게 기술자는 일을 할 때 먼저 연장을 잘 손질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어떤 나라에 살든지 그 나라의 대부 중에서 현명한 사람을 섬기고, 그 나라의 선비 가운데 인한 사람과 벗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는 학문과 수양의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의 중요성을 기술자에 빗대어 말해준 것이다.

 

벗을 대하는 자세

 

자공이 벗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에는 공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조언하고 인도하되 그래도 할 수 없다면 그만둘 일이지 스스로 치욕을 당하지는 말라고 가르쳐 주었다. 벗에게 잘못이 있을 때는 진실한 마음으로 조언을 건네는 것은 친구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 조언을 듣지 않는다면 친구의 허물을 바로잡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되며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는 논어에서 그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는데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 자주 간언을 하면 치욕을 당하고, 친구에게 자주 충고를 하면 소원해진다고 말하였다. 임금을 위하려는 마음만 앞서서 때와 상황을 살피지도 않고 무시로 충고한다면 심기를 거스르게 되어 결국 치욕을 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치욕은 임금의 완고함이 아니라 스스로가 불러들인 것이다.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로 부족한 점이 보일 때마다 수시로 충고를 한다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듣기 괴로워지니 결국 친구는 함께하는 자리 자체를 조금씩 피하게 되고 친구 사이 또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흔히 듣기 좋은 말도 한 두 번이지 라는 말이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주자는 이 구절에 대해 벗은 인을 돕는 존재이므로 그 마음을 다해 고해주고 그 말을 선하게 하여 인도하지만 의로써 합한 자이므로 불가하면 그만두어야 하고, 만약 너무 자주 해서 소원하게 되면 스스로 욕을 당하는 것이라고 해설하였다.

 

함께 수양하는 벗이란 더불어 인을 추구하는 자이기에 서로 부족한 점들을 충고하며 함께 고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다 같을 수는 없어서 학문과 수양의 완성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가더라도 방법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는 잘 맞는 방법이지만 친구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때에 상대에게 내 충고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독선이 될 뿐이다.

 

충고하는 방법

 

근사록에서 정자는 충고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함께 있으면서 잘못을 충고하지 않는 것은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 진실한 마음으로 교제하면 말하기 전에도 그 마음이 전해져 말을 하면 사람이 믿게 된다. 선한 일을 권할 때 정성은 남음이 있고, 말은 부족하게 해야 상대에게는 유익하고 나에게는 충고를 무시당하는 욕됨이 없다. 

진정한 친구란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하는 관계여서 굳이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눈빛만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득이 말로 해야 한다면 말은 최대한 줄이고 대신 정성을 넘치도록 담아야 한다. 말로 전달할 수 있는 마음에는 한계가 있으니 진심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다산은 귀양지에 있을 때에도 함께 학문과 수양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충고의 서신을 보냈는데 그 서신들에서는 충직하지만 때로는 신랄하게 꾸짖을 때도 있었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 일로 물의를 빚고 귀양을 가게 된 김기서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바로잡을 것을 권하며 아래의 내용을 보낸 적도 있다.

형의 본뜻은 선을 즐거워하고 의리를 사모하는 데에서 나왔겠지만 터럭만큼도 귀신에게 아첨하거나 허망한 뜻을 품은 적이 없다고 하여 스스로 당연하게 생각해 부끄러움이 없다고 여기실까 염려됩니다. 이런 까닭에 원망하고 번민하는 뜻이 절실하고, 자신을 탓하거나 뉘우치는 마음은 참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만년에 허물이 클 것이니 어찌 감히 한 마디 말로 통절하게 충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그 충고는 통렬하여 진실한 마음은 제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중요성

 

다산은 학문적인 이견이 있는 학자들과는 치열하게 논쟁하며 과감하게 비판하기도 했는데 만약 그 논쟁에서 당장 합의에 이를 수 없다면 그 결론은 후세에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서로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며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면 어설픈 논쟁이 될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다산은 김승지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자가 의리를 공부하고 익히는 것은 절차탁마를 중히 여겨야지 부화뇌동해서는 안 되니 설령 갑과 을이 논쟁을 한다고 해도 서로 힘써서 자세히 살피고 마침내 함께 바른 데로 돌아가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서로 선입견만 고집해서 받아들이기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면 잠시 놓아두고 논하지 말아야 하고 이후에 천천히 후세의 군자를 기다릴 뿐입니다. 어찌하여 각각 깃발을 세워 서로 치고 받으며 경위를 가리고 남북을 나눈다는 말입니까?

 

충고하는 자세

 

서로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은 내가 상대보다 낫다는 우월감이나 나만 옳다는 아집에서 비롯되는데 내 주장이 옳다고 믿는다면 상대방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내 주장과는 다른 점이 무엇인지, 서로 합치될 방법은 없는지를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역지사지의 상상력으로 역지사지는 인문 고전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고 다산의 삶과 글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하는 것은 나의 주장과 상대방의 주장을 철저히 검토한 이후에 조심스럽게 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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