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뜻
논어에는 제자들이 어떤 사람을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장면이 두 번에 걸쳐서 나오는데 이는 선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제자들이 선비로서의 바른 자세와 올바른 덕목을 알고 싶어서 스승인 공자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각각 제자들의 성향에 맞게 답을 해 주었다.
먼저 제자 자공의 물음에 대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도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자공은 치부를 비롯해 언변과 외교술에 매우 뛰어난 인물로서 이른바 세속적인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공자는 진정한 선비란 자신의 행동이 도리에 벗어난 것은 아닌지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하며, 특히 외국에 사신으로 가더라도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말씀은 지나치게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정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맞춤형 가르침이다.
그 다음으로 자로가 스승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는 자로의 성향에 맞추어 이렇게 대답해 준다.
서로 진심으로 격려하며 노력하고, 잘 화합하고 즐겁게 지내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 친구 사이는 간곡하게 선을 실천하고 악을 멀리하도록 권하며 형제는 화목하고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것으로 자로는 한량 출신이어서 그 성향이 활달하고 적극적인 만큼 감정을 잘 조절하지는 못해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도 잘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자의 이 가르침은 공자가 자로에게 주는 구체적인 실천 덕목인 것이다.
친구의 덕목
친구 간의 덕목에서 절절이란 간절한 마음을 뜻하고, 시시는 바른 길을 가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충고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권하는 것이고, 형제 간의 덕목에서 이이란 화목하고 즐거운 모습을 말한다.
공자는 친구 간에는 간곡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충고해야만 한다고 말했는데 사실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더라도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충고란 아무리 그 의도가 좋더라도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충고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상대보다 낫다는 교만한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있게 마련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스스로를 아는 일이라고 말했듯이 내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결점은 쉽게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때에는 반드시 나의 부족함도 먼저 인정하는 겸손함을 전제로 삼아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바탕이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던지는 충고란 교만함일 뿐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바른 관계
하지만 친구의 장점만을 보고 무조건 칭찬만을 늘어놓는 일은 반드시 경계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산은 친구 이문달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친구와의 바른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십년 전에 서울의 여러 벗과 강학하며 도에 대해 논할 때의 일입니다. 갑이 말끝마다 칭찬하면 을은 몸을 받들어 사양합니다. 이번에는 을이 배나 더 칭찬합니다. 그러면 갑은 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겸양합니다. 마침내 몇 년 후에 보면 그들 중 누구도 벼슬길에 나아가 우뚝하게 선 사람이 없습니다. 벗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절시마탁하는 유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돌침으로 뼈에 침을 놓듯이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경계하고, 쇠칼로 눈동자의 백태를 깎아내듯 허물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위 글은 이문달이 편지로 다산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자 다산이 내놓은 대답이다.
진실한 사람은 벗을 무조건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지 못하는 잘못을 보고 신랄하게 지적해 고치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지적이고, 이 글 내용 중 절시마탁에서 절시는 절절시시에서 따온 말이고, 마탁은 절차탁마에서 따온 말로 부지런하게 학문을 닦고 수양을 하는 자세를 뜻한다.
형제의 도리
다산은 진정한 형제의 도리에 대해서도 자신의 삶과 글로 잘 말해주고 있다.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은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서적인 자산어보를 썼던 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다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정조가 형이 동생보다 더 낫다고 칭찬할 만큼 대단한 학자였고, 탁월한 학문과 높은 수양의 경지를 갖추어 다산과 편지로 교류하면서 다산이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어 내는 데에 큰 힘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다산은 수시로 형에게 편지를 보내어 저술에 관해 그의 의견을 묻기도 했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정약전은 모진 귀양살이에서 다산보다도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고, 다산은 형님이자 평생의 학문적인 동지를 잃은 슬픔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외로운 천지 사이에 다만 우리 손암(정약전의 호) 선생이 있어서 나의 지기가 되었는데 잃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비록 얻는 바가 있어도 장차 어디에 말하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 아내와 자식도 내 지기가 될 수 없고, 집안도 모두 지기가 아니다. 지기가 세상을 떴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나를 알아주는 지기
이 편지에서 다산은 형 정약전을 나를 알아주는 존재인 지기로 표현했는데 이는 최고의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의 고사에서 관중이 절친한 친구 포숙을 두고 나를 알아주는 존재라고 했던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평상시에는 서로 화목하고 즐겁게 지내고, 고난에 처했을 때에는 서로 의지하며 힘이 되고, 학문과 수양을 할 때에는 서로 격려하며 동행하고, 세상에서 오직 나를 알아주는 지기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형제와 벗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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