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 자로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자로라는 인물은 용맹하고 걸출한 성격으로 공자를 만나기 전에는 칼을 차고 다니면서 한량 생활을 하다가 공자의 제자가 되고 나서도 예전 버릇을 버리지를 못해서 공자가 걱정거리라고 말하곤 했던 인물이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자로는 용기에서는 나를 앞서지만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을 모르니 자로처럼 강직한 성품에 용맹이 지나친 사람은 제 명에 죽기 어렵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이후에 자로는 괴외의 난을 바로잡으려고 현장을 찾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마는데 죽음 앞에서도 군자는 죽더라도 갓을 벗지 않는다고 말하며 갓끈을 다시 묶고 죽음을 맞음으로써 공자의 가르침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 성격이 강직했던 만큼 자로는 스승인 공자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했는데 오히려 강직함이 지나쳐 예에 어긋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의 성격을 보면 당연히 임금 앞에서도 자기 생각을 밝히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임금을 섬기는 방법
논어에 따르면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진실을 속여서는 안 되니 속이지 말고 범하여 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는데 주자는 범한다는 것은 얼굴을 범해 강쟁함을 이르는 것으로 임금이 화가 나서 얼굴이 붉게 변한다고 해도 곧고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고, 사마광의 제자인 범조우는 자로의 강직한 성품을 간파하여 안색을 범하는 것은 자로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속이지 않는 게 어려웠으니 공자가 먼저 속이지 말라고 하고 후에 안색을 범하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심경의 저자 진덕수는 거짓말을 하고 바르지 않음을 기라고 하고, 곧은 말을 하고 숨기지 않음을 범이라 하니 기와 범은 반대이고, 임금을 섬기되 범함은 있고 숨김은 없다고 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과 범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니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범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만약 진실을 말해야 하면 어쩔 수 없이 임금의 얼굴을 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직언의 어려움
예기에는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어버이를 섬기는 데 숨기는 것은 있어야 하고 범하여 간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고, 임금을 섬기는 데는 범하여 간해야 하고 숨기는 것이 있으면 안 되며, 마지막으로 스승을 모시는 일에는 범하는 일도 숨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
어버이에 대해서는 그 마음이 상하지 않게 헤아려야 하니 진실이라고 해도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은 꼭 진실을 밝혀 따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지켜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에게는 모든 일을 밝힐 수 있어야 하는데 임금은 개인이라기보다는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심기만 살피고 진실을 은폐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불편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은폐하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나라가 망하면 임금이나 신하, 백성 모두가 존립할 수 없다.
하지만 친구 앞에서도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하물며 최고 권력자의 얼굴이 붉어지는 상황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평소엔 임금 앞에서도 직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의 일로 닥치게 되면 쉽지 않은 것에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자로가 아무리 강직하고 용감했다 하더라도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회피할 수 없는 신하의 책임
다산은 신하가 임금 앞에서 바른 말을 하기가 어려운 한계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이는 그 자신이 모함을 받아 억울하고 험난한 삶을 살았기에 권력의 속성을 잘 알면서도 바른 도리를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회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야에서 진출한 선비가 가장 좋은 것이니 그때는 임금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론이나 책 같은 글을 올리는데 그 글은 충직하고 강직하고 간절해도 해롭지 않다. 미사여구로 문장이나 꾸미는 작은 솜씨는 설사 한 세상에서 회자된다고 해도 광대가 우스갯짓을 하는 행동 따위일 뿐이다.
벼슬을 하면서 임금 앞에서 강직한 간언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꾸미는 말을 하게 되는데 차라리 그것보다는 초야에서 갓 올라온 선비처럼 또는 아예 초야로 물러나 강직하게 간언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솔직한 다산의 심정을 말한 글이다. 하지만 다산은 설사 관직에 있어도 절대로 간언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직책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관의 지위에 있을 때는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논의를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숨겨진 고통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
임금에게 간언하고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직무를 지닌 언관은 아무리 두렵더라도 그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실제로 다산은 사헌부 지평, 사헌부 간언 등 가장 중요한 언관의 직을 맡아서 수행한 적도 있어서 이 글은 그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글이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설득
권력 앞에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다. 특히 자신의 임명권자나 안위를 위협할 만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조직이 잘못되고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이고, 특히나 자신이 맡은 직무와 관련된 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때 필요한 것은 거북한 이야기일지라도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는 지혜여서 최대한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올바른 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저서 한비자에는 설득이 어려운 까닭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맞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실려 있기도 하다. 부드러운 전달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심리를 읽고, 적절한 비유와 감성적인 표현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반드시 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의 의미 (0) | 2025.06.08 |
---|---|
내면과 외면의 조화 (0) | 2025.06.07 |
친구를 사귀는 기준 (0) | 2025.06.06 |
인생의 시험 (0) | 2025.06.05 |
군신 관계 (0) | 2025.06.02 |
용기와 절제 (0) | 2025.06.02 |
생활 속에서의 실천 (0) | 2025.06.02 |
예술을 통한 배움 (0) | 2025.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