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익 추구
맹자에 나오는 유명한 글을 살펴보자.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순임금의 무리요,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이다. 순임금과 도척을 나누는 차이를 알고 싶은가? 선한 일을 행하는 것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일 뿐이다.
맹자는 올바른 사람과 부도덕한 사람을 나누는 것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느냐의 문제로 보았다. 물론 현대사회의 시각으로 보자면 선과 악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쁜 일로 보는 것이 그리 설득력 있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고전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에는 반드시 바른 도리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논어에 실려있는 견리사의가 그 대표적인 주장으로 이익이 되는 일을 보면 무엇보다 먼저 그것이 의로운 일인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인에 실려 있는 부귀영화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려서는 안 된다라는 글도 같은 뜻의 말이다.
위 맹자의 글은 관직의 관점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한 것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했을 때에는 오직 벼슬자리 하나 얻을 것만 생각하고, 관직에 오른 후에는 자신의 자리보전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이익에 휘둘려서 끌려 다니는 삶이라는 것이다.
다산의 직관론
다산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홍문관의 직제인 청직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직관론에 실린 글에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
재정이 남는지 모자라는지를 분별하지 못해도 청직을 맡는 데는 해가 되지 않는다. 군대의 일이나 소송과 옥사를 몰라도 청직을 맡는 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관직의 언어를 등한히 해도 청직을 맡는 데에 상관이 없다. 어리석고 용렬해 일찍이 시비를 따지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에 모자람이 있더라도 안 될 것이 없다. 기준도 없이 당론을 과격하게 세워 인재를 가로막고 능히 그 새순을 누르고 싹을 꺾기나 한다. 남의 사사로운 일을 들춰내어 각박하고 잔혹한 논리를 펴고, 남의 과오를 캐서 적당한 때를 노려 참소하고 이간질한다. 이것이 바로 청직을 맡은 자가 하는 일이다. 그러다가 수령이 되어 외지로 나가라는 명을 받으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라면서 탐탁치 않게 여긴다. 친구들은 위로하고 전별하며 그를 떠나보낸다. 저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다 똑같은 이들일 뿐이다. 이 사람을 시켜 저 사람을 기르게 하는데도 마땅치 않게 여기니 그 뜻을 세움이 오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청직의 폐지
청직이란 임금에게 간언하는 간관이나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다산이 살던 당시 가장 권위있는 자리면서 누구나 선망하는 좋은 관직이었지만 다산이 보았을 때에는 정작 청직을 맡은 이들은 실력도 없고 일에 임하는 태도 역시 정당하지 않았다.
실력에 상관없이 오직 자기 편만을 챙겨서 능력 있는 인재의 등용을 막았고, 자기편일 경우 어떠한 잘못도 눈감아주지만 다른 당파의 경우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공격했다. 또한 지방의 목민관으로 나가라는 명을 받으면 자신을 업신여기는 인사라고 여겨서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이가 목민관이 되면 백성을 어떻게 대할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니 이런 이유에서 다산은 차라리 청직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한탄을 했다.
공직자의 자세
그는 대신과 같은 높은 관직은 물론 하급관리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신의 의리는 사람을 써서 임금을 섬기는 까닭에 선악을 밝게 판단해 어진 인사를 등용하고 시비를 밝게 구별해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어진 인사와 뛰어난 인재가 한몸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임금을 섬기는 것, 이것이 대신의 직분이다.
미관말직에 있을 때에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정성을 들여서 맡은 일을 다해야 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탐욕스럽고 비루하고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점만 지적해야지 편파적으로 의리에만 의거해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이면 편을 들고 뜻이 다른 사람이면 공격해서 함정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삶의 자세
삶의 자세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이익을 좇는 데에만 급급한다면 그 사람은 이익이 된다 싶으면 그 어떤 일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당장 재산을 늘리거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인생의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서 삶은 곧 피폐해질 것이고 바른 사람들도 하나둘 곁을 떠난다.
역경에 처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면 역경마저 잊어야 할 어두운 역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은 스스로 썼던 묘비명에서 자신의 귀양 생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육경과 사서를 가져다 골똘히 연구했다.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로 명과 청에 이르기까지 유가의 학설 중에서 경전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을 널리 수집해 꼼꼼히 살펴 잘못된 것을 바로 하고, 취하고 버릴 것을 드러내어 일가믜 말로서 갖추었다. 경계하고 공경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동안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 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준 복이 아니겠는가?
다산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귀양 생활 등 자신에게 닥친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중요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와 같은 위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우리의 삶에서도 닥쳐온 고난으로 인해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많은 이익을 얻는 순간이 반드시 삶에서 귀한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는 자기의 뜻대로 결정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삶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고 널리 사람들을 위하는 삶을 살면서 나 자신을 항상 경계하고 닦아 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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