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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군신 관계

by new-info-spring 2025. 6. 2.

신하의 간언

안자라는 학자는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제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논어를 비롯해서 많은 고사에 소개되고 있는 안자는 훌륭한 인격과 뛰어난 재능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는데 사기의 저자 사마천도 안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의 마부를 하더라도 모시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제나라 군주 경공은 안자에게 충신은 군주를 어떻게 모시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안자는 이 물음에 군주가 재난을 당할 때 그를 위해 죽지 않고, 군주가 망명할 때 그를 배웅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에 경공은 깜짝 놀라서 군주가 신하를 위해서 땅을 봉해주고 관작도 나눠 줬는데 군주가 어려울 때 그렇게 하는 것은 무슨 연유냐고 되물었다. 안자는 신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올바로 행해지면 평생 재난이 있을 리가 없는데 신하가 군주를 위해 죽는 일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신하의 간언이 받아들여지면 평생 망명할 필요가 없는데 신하가 군주를 배웅할 일이 있겠습니까? 신하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군주가 재난을 당했는데도 그를 위해 죽는 것은 헛된 죽음이고,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군주가 망명한다는 이유로 그를 배웅한다면 그것은 거짓 충성에 불과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위의 대화는 신하가 일방적으로 군주를 모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군주 역시 권세만 휘두를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군신 간의 도리를 말해주는데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군주와 신하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군신 관계

논어에는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대하고, 신하는 충으로써 임금을 섬긴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노나라 임금 정공이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자 공자가 답해준 말이다. 당시에 막강한 세력을 구가하며 군주의 권위까지 위협하던 계손씨에게 시달리던 정공은 올바른 군신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공자도 안자와 마찬가지로 군주와 신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하는 관계라고 말하였는데 군주는 신하에게 반드시 예를 지켜야 하고, 신하는 충심으로 군주를 보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의미는 같은 말이지만 안자에 비해 공자의 설명은 훨씬 부드러운 편이다.

여기서 충이란 흔하게 알고 있는 일방적인 복종이나 무조건적인 충성이 아니라 경건하고 충실하게 임금을 대하되 반드시 올바른 도리를 따르도록 군주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 구체적인 방법은 효경에 실려 있다.

군자가 임금을 섬길 때 조정에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임금의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 임금의 훌륭한 점을 받들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으려고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군주와 신하가 서로 친애할 수 있다.

신하가 군주를 충실하게 모시는 자세의 핵심은 군주의 잘못에 대해 직언을 하고 고치도록 보필하는 것이다. 만약 리더의 뜻에 무조건 따르거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한다면 이런 태도는 충성이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신하란

다산도 신하가 임금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아래와 같이 말했던 적이 있었다. 

임금을 섬길 때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침저녁으로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기예를 지닌 사람도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 없다. 글씨를 민첩하게 잘 쓰는 사람도 그렇고, 얼굴빛을 잘 살피며 비위를 맞추는 사람, 자주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사람, 권력자에게 이리저리 빌붙는 사람도 임금이 존경하지 않는다. 

 

군신 관계

 

사람들이 보기에 능력이 있거나 처세술이 좋아도 좋은 신하라고 할 수 없고 군주의 마음에 들어 총애를 받거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다산이 말한 좋은 신하란 임금의 존경을 받으며,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으로 임금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산은 그 스스로는 그런 신하가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고 기쁘게는 했을지 모르지만 존경과 신뢰를 받는 신하가 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정조의 큰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다른 신하들의 시기를 받아 끊임없이 모함에 시달렸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임금 역시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만약 정말 크게 키워주려는 인물이었다면 차라리 그 아끼는 마음을 조용히 감추고 양육해 나가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더의 자질

선우후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선비는 마땅히 천하 사람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해야 하고, 천하 사람들이 다 즐거운 뒤에 즐거워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보이지 않는 계급 질서는 더 견고해졌고, 심지어 비열하기까지 한 세태다. 높은 지위, 많은 재산을 가지면 마치 그  어떤 행동이라도 저질러도 되는 권리처럼 받아들여지고 높은 지위에 이르면 사람들을 위해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착각이 상식처럼 되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계급을 막론하고 서로 간의 존중이 제일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관계이다. 그 어떤 지위나 부와 권력을 가졌어도 마찬가지여서 눈앞의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른다면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옛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임금에게도 신하를 존경하고 신하에게 진심으로 존경받을 것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신하와 임금의 관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뛰어난 리더라면 갖추어야 할 자질도 바로 구성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점이라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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