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사는 용기
맹자는 올바른 도리, 즉 의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그의 저서에는 물고기도 내가 먹고 싶고, 곰 발바닥 요리도 욕심이 나지만 이 둘을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당연히 물고기는 포기하고 곰 발바닥 요리를 택할 것이고, 삶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도 내가 역시 바라는 것이지만 이 둘을 함께 취할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할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있다.
의와 목숨을 둘 다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둘 중에 하나만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되면 자신의 생명보다는 의를 취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성인의 경지에 오른 맹자가 한 말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인 우리는 뜻은 이해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맹자도 역시 함부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올바른 도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다. 운명에 순응해야 하지만 제 맘대로 살고 쉽게 목숨을 버리는 것은 하늘의 뜻에 바르게 순응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모두 하늘의 뜻에 속한 것이기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목숨은 어차피 하늘에 달린 것이라고 하면서 함부로 사는 것도 바른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기울어진 담 밑에 서는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라 만용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올바르게 살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다가 목숨을 잃는 것도 바른 일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남을 비방하거나 비웃으면 원한을 사고 위험에 빠지게 되니 결국에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학집해에서는 높은 데 올라가지 않고 깊은 물에 올라가지 않는 것은 스스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식은 이미 마땅히 자신을 낮추어 그 부모를 높이고, 마땅히 자신을 소중히 여겨서 그 몸을 아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특히 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아껴 부모에게 자식을 잃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의 삶
다산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젊은 나이에 왕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당쟁에 휘말려 죽을 위험에 처하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긴 유배 생활을 하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는데 그는 비록 의로움을 좇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을 지키지 못한 회한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저서 여유당기에서 다산은 나의 병은 내가 잘 아는 것이니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가 없고, 선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해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라도 기쁠 수 있다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꺼림칙해 참을 수 없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장성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설 줄을 몰랐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는 지난날을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을 끝없이 좋아했으나 홀로 비방은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노자의 말씀을 보면 신중하라, 한겨울에 내를 건너듯이, 두려워하라, 사방에서 에워싼 듯이 라고 하였으니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이 하므로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고, 사방에서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을까 염려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학문을 좋아했기 때문에 쉼 없이 공부하면서 정의로운 일이라면 남을 비판하는 데에 주위를 돌아보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원한을 사서 귀양 생활을 하면서 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삶이란 것은 보다 신중해야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음에서 일어나고 뜻에서 싹트는 모든 것은 매우 부득이한 것이 아니면 그만두며, 매우 부득이한 것일지라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그만둔다. 진실로 이같이 된다면 천하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삶의 자세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세는 당연히 필요하고, 굳건한 마음이 없다면 목표를 이루기도 힘든 것이지만 삶 자체도 언제나 순탄하지많은 않고, 법과 원칙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거나 정의롭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도 아닌 경우도 많다.
위의 가르침들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한부로 소신과 믿음을 굽혀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과감한 결단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세심함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큰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더더욱 담대하면서도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면서 나아가는 삶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친구는 또 하나의 자아라고 말했는데 이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함께 나누는 친구는 마치 또 하나의 자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동양에도 관포지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제나라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던 관중을 구해 재상으로 추천했던 포숙과의 우정에서 생긴 말로 친구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고, 나에게 생명을 준 부모와도 같은 존재라는 의미이다.
서로 목숨을 내어줄 수도 있는 우정이기에 옛 말에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벗에게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거나 부모가 계실 때 친구와 함께 죽기를 약속해서는 안 되지만 만약 친구와 같이 길을 가다가 환란을 당하면 어버이가 있음을 핑계로 구해 주지 않아서도 안 된다는 등 우정을 죽음에 빗댄 글들이 많다. 물론 둘 다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만약 한 사람이 위험에 빠진다면 설사 위험하더라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이 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기와 절제
인간의 삶은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하지만 모든 상황이 선을 그은 것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옳고 그름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무엇을 가지고자 할 때는 갖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없다면 갖지 않는 것이 맞고, 베풀 때에도 남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이 없이 나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베풀려고 한다면 차라리 베풀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다.
나를 과시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것은 받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거나 기쁘지 않을 수도 있고, 죽음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고 무모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죽음을 선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삶에도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가 있고 삶은 죽음보다 더 소중하므로 삶에 바탕을 두고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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