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이인영이라는 젊은이가 찾아와서 문장학을 배우고자 하자 진정한 배움의 의미와 그 순서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그 젊은이는 많은 지식과 탁월한 글 쓰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영민한 젋은이였음에도 진정한 바른 뜻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큰 생각은 없었고 다산에게 오직 좋은 글만 쓸 수 있다면 세상을 버려도 좋다고까지 말을 했다. 이렇게 극단으로 치우치는 청년에게는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생각한 다산은 이렇게 가르쳤다.
다산의 가르침
문장이란 무엇인가? 지식이 안으로 쌓여 그 아름다움과 멋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몸에 윤기가 흐르고, 술을 마시면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찌 갑자기 이를 이룰 수 있겠는가? 중화의 덕을 쌓아 마음을 기르고, 효우의 행실을 닦아 성품을 만들고, 공격함으로 지니고, 성실로 일관하면서 변함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서로 몸을 채우고, 육경으로 식견을 넓히며 사서로 고금의 변화에 통달해야만 한다.
지금부터 문장학에 뜻을 끊고 서둘러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라. 안으로 효우의 행실을 돈독하게 하고, 밖으로는 경전 공부를 부지런히 함으로써 성현의 바른 말씀이 언제나 몸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거시험도 준비해서 앞길을 열고, 임금 섬기기를 바라도록 하라. 그리하여 태평한 시대의 상서로운 인물이 되고, 후세의 위인이 되어야 한다. 경박한 취미로써 천금 같은 몸을 가볍게 버려서는 안 된다. 진실로 자네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문장학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름질이나 술집에서 노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배움의 실천
사서와 육경, 그리고 역사서를 공부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지식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것으로부터 얻은 배움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과거를 보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된다면 배움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문장이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야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 된다. 만약 가벼운 잔재주나 기교에 의지하여 문장을 펼치려 한다면 그 문장은 깊이도 없을 뿐더러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이 되고, 근본을 튼튼히 하지 않고, 행함을 통하여 확신을 얻지도 않고, 세상의 경륜도 쌓지 않은 채 단지 문장을 쓰는 기교만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는 겉멋에 불과한 것이다.
다산의 철학
그가 이렇게 통렬하게 지적하면서 방황하는 젋은이에게 냉정하게 길을 제시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의 삶 자체가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인제 다산은 평생을 두고 경전을 공부했던 유학의 전문가이면서 어릴 때부터 많은 시와 문장을 남긴 대 문장가였고, 또한 본인의 아들에게조차 진부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나 지루하고 쓸데없는 주장 따위는 한갓 종이와 먹을 낭비하는 것이어서 직접 진귀한 과일이나 채소를 심어서 먹고살 도리를 넉넉하게 하는 것만 못하다고 가르칠 정도로 진정한 학문을 강조하였다.
즉 가벼운 잔재주나 값싼 인기에 영합하는 헛된 재주, 실천없이 쓸모없는 주장만을 펼치는 학문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고 이런 공부흘 할 바에는 차라리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농사를 지으면 살림살이가 넉넉해질 수 있지만 헛된 공부는 종이와 먹은 물론 공부하는 자신의 소중한 시간마저 날려 보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지식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지 않는 것이라면 빛을 잃고, 실천하지 않는 지식이란 공허한 것이다. 명성은 높으나 실속이 없는 사람이 바로 이런 지식인들이며, 그럴듯한 겉모습과 높은 명성으로 한때를 풍미할 수는 있지만 이들의 결말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허망한 것이었다. 이런 얄팍한 지식은 머지않아서 실속이 없는 얕은 내면을 내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부는 스스로의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실천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지식은 배움으로 얻지만 사람의 근본은 지식으로 바로 세울 수 없다. 지식보다는 사람됨을 이루는 것이 먼저이다.
자하의 가르침
자하는 학문과 문장에 띄어나 공자의 현명한 제자 열 명을 일컫는 공문십철에 속하는 학자였는데 성향이 진취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데가 있어서 잘 알려진 과유불급의 고사에서 불급, 즉 미치지 못함에 해당하는 제자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나서 배움에 대해 많은 통찰력이 있는 글들을 남겼다.
그는 배운 사람의 조건이란 설사 배움이 없어서 지식 면에서는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진실하고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배운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어서 극복하기 어려우나 그 본성은 인정하되 그 마음을 바꿔서 현명한 사람과 가까이하며 배우는 것이 배움의 첫걸음에 해당한다고 하였고, 그다음은 부모를 섬길 때는 힘을 다하여 하고, 임금을 섬길 때는 몸을 바칠 각오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은 친구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말과 사소한 약속부터 지켜나가야 하는데 흔히들 중요하고 큰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상에서 맺는 약속은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지 쉽지만 진정한 신뢰는 그런 수없이 스치는 작은 말들을 지켜 나가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다산도 공부의 근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부란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부모를 모시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행하지 않는다면 단지 겉치레에 불과하고 어려운 학설과 고상한 말을 입에 담더라도 정작 이것은 남을 속이고 자신조차 기만하는 행동이라 하였다.
실천하는 삶
현세는 배움을 지식의 많고 적음으로만 판단하고, 출세와 영달의 도구로 생각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덕으로써 뒷받침이 되지 않는 지식은 오히려 배우는 그 자신을 망치고 집안과 나라를 망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맹자는 지식을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덕목이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면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옳고 그름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것이니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여 나아가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신 관계 (0) | 2025.06.02 |
---|---|
용기와 절제 (0) | 2025.06.02 |
생활 속에서의 실천 (0) | 2025.06.02 |
예술을 통한 배움 (0) | 2025.06.01 |
일상이 배움의 스승 (0) | 2025.05.30 |
스스로를 닦는 노력 (0) | 2025.05.29 |
생각과 행동간의 거리 (0) | 2025.05.27 |
교육으로서의 음악 (0) | 2025.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