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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생활 속에서의 실천

by new-info-spring 2025. 6. 2.

일상의 일

논어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와 자유가 서로 논쟁하는 고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자유는 자하의 제자들은 물을 뿌리고 비질하는 일이나 손님을 응대하는 일,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은 잘하지만 그런 것들은 말단이고, 근본적인 것을 따져 보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하려는 것이냐고 말했다. 자하는 이를 듣고 군자의 도에서 어느 것을 먼저 전하고 어느 것을 뒤에 미루고 게을리하겠는가? 이를 풀과 나무에 비유하자면 종류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 하는 것이다. 군자의 도에서 어느 것을 함부로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갖추고 있는 것은 오직 성인 뿐이라고 말했다.

자유는 자하가 너무 기초적인 일에 치우쳐서 정작 높은 차원의 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을 탓하며 그래서야 언제 수양과 학문의 진전이 있겠느냐고 한 것인데 자하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군자의 도는 일상의 일에서부터 높은 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학문의 처음에서부터 높은 차원의 도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성인밖에 없으니 제자들은 자기 수준에 맞게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높은 도에 이르기까지 합당한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하와 자유는 모두 공문십철에 속하는 제자들로 공자는 이 둘을 학문과 문학에 가장 뛰어난 제자들로 꼽았다. 이처럼 높은 학식과 수양을 지닌 두 제자들 가운데 누구의 견해가 옳은지에 대해서는 선뜻 판단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단지 두 사람이 제자를 가르치는 교육 방식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될 뿐이다.

 

일상 속에서의 깨달음

논어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 보면 자하가 좀 더 공자의 뜻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논어에 실려 있는 고사를 보면 공자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공이 의아해서 사람들이 어찌 스승님을 몰라주겠냐고 묻자 공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일상의 일을 배워서 심오한 이치에까지 도달하였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저 하늘이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있다. 

 

공자의 학문은 차원이 높은 수준의 학문이지만 그 시작은 바로 일상의 사소한 지점에서부터였다고 공자는 말한다. 아무리 높은 차원의 도이더라도 일상에서 그 깨달음을 얻은 것이고, 자유가 말했듯이 공부의 근본은 도와 덕일지라도 그 시작은 바로 가까운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하루의 준비

예기에는 크고 복잡한 것을 해결하고 싶으면 작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모든 사람이 행해야 하는 하루를 시작하는 규범으로서 첫닭이 울면 모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데 먼저 스스로의 몸을 가다듬고, 침구 등 주변을 정리하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각자가 맡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몸을 깨끗이 하고 주변을 정돈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주변을 깨끗이 하는 행동을 통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소학집설에서는 이 부분을 베개와 대자리를 걷는다는 말은 사사로이 쓰는 물건을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정리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집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사회에서 어떤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역은 자신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물론 일정한 지위에 오르고 나면 누군가를 시켜야 하는 일들이 생기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위에 따라 행하는 일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각자가 주어진 책임에 충실해야 하고, 사적인 일까지도 남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해서 일과 일 밖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게 되면 이른바 갑질을 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인정을 받을지언정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불행이 닥쳤을 때 큼지막하고 먼 데에서만 답을 찾는 사람은 그 고난을 이겨내기가 힘들고, 반대로 사소한 지점에서부터 차근차근하게 돌아보며 해법을 찾아나간다면 고난을 이겨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데 그 시작은 바로 자신의 삶을 단순화하고, 옳지 않은 일은 중단하며, 주어진 자신의 일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그 어떤 높은 이상도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집 쓰레기 분리배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지구온난화부터 걱정한다면 이는 우스꽝스러울 뿐이고, 자신은 물론 온 집안이 부도덕한 사람이 사회 정의를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다산은 이에 대해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한다는 것은 현묘하고 심오한 이치를 탐색하며 만 가지 변화를 두루 섭렵하는 일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행하는 도리를 마땅히 다 헤아려 말없이 마음속에서 나누어 살피는 것이라 말하였다. 

생활 속에서의 실천

섬기는 삶

또한 심오한 지식을 자랑하기에 앞서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부터 진심을 다해서 대해야 한다.

논어에는 공자가 효에 대해 제자를 가르치는 내용이 있는데 그는 요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을 말하지만 개나 말조차도 모두 어미를 먹여 살리는데 공경할 줄 모른다면 이런 짐승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였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만 살피는 것이 효도가 아니고 부모의 마음을 항상 밝게 해드리기 위해 스스로부터 밝은 얼굴로 대하는 것이 효도라는 것이다.

 

효도와 학문의 근본

효도란 부모에게 잘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으로 이는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이 자식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심히 배우고 또 힘껏 일해서 성취를 이루는 삶 자체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고, 나아가서 최선을 다한 삶의 자세는 반드시 의로워야 한다.

다산도 학문의 근본이란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라고 말했는데 그가 말한 효도는 이론이나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고 실천적인 뜻에서의 효도였다. 신분이 높아지고 부유해지면 사소하고 귀찮은 집안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다산은 효도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부모의 봉양을 직접 챙기는 것과 같은 부모를 향한 자식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공부의 목적은 지식을 쌓아 출세하는 데에 있지 않고 가족을 돌보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처럼 사람답게 사는 데에 있다.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서 부모의 마음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제대로 공부한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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