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사귀는 기준
논어에는 공자가 군자의 자격에 대해 했던 말이 실려 있는데 이는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게 되니 진실하고 믿음성 있는 행동에 힘쓰며, 자기와 같지 않은 자를 벗 삼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는 글이다.
그 중에 벗을 사귀는 기준에 대해서는 자기와 같지 않은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는 글이 있는데 이는 언뜻 보기에는 어린 시절에 듣고 정말 질색했던 너보다 공부 못하는 아이와는 사귀지 말라는 잔소리와도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자는 이 말을 사람을 점수로 평가하듯 가려서 사귀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친구란 학문과 수양에서 함께 수행하며 서로에게 서로를 함양해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즉 같은 눈높이로 함께 앞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것이 친구이기에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면 벗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예기에 실려 있는 과부의 아들은 탁월한 재주가 없으면 벗으로 삼지 않는다는 글 또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 당장 과부의 아들이라는 말 또한 소외된 자를 일컫는 일종의 비유임을 감안하더라도 편견을 전제로 삼았기에 그릇된 표현이기는 하다.
다만 우리는 주어진 예문을 글귀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행간에 숨은 화자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위의 글에는 어려운 환경에 갇힌 사회적 약자라고 하더라도 재주를 갖추고 있다면 그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 처해서 힘겨울지라도 탁월한 능력을 쌓을 수 있으면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벗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차별에 대한 반대
다산은 그의 생애를 통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철저히 반대했는데 특히 신분과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날 것이라는 예단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그의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대부 자제만 해도 모두 쇠미한 기운을 띄고 있어 다 아랫길이고, 그 정신 상태는 책만 덮으면 모두 잊어버리고 품은 뜻은 하류에 안주합니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가운데에서 미묘한 말과 논의를 이따금 한 번씩 말해주어 향학을 권해 보면 그 꼴이 마치 발이 묶인 꿩과 같아서 쪼아 먹으라고 해도 쪼지 않아 머리를 눌러서 낟알에 갖다 대면 부리와 낟알이 서로 닿아도 끝내 쪼아 먹지 않는 것과 같으니 장차 이를 어찌하겠냐고 하면서 사대부 집안 아이들의 나약함과 나태함을 깊이 한탄하기도 했다. 그들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도전하지 않아도 타고난 신분이 보장되기에 노력하지도 도전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인재 등용
다산은 또한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색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은 엎드려 생각하건대 인재를 얻게 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온 나라의 인재를 뽑아 발탁하더라도 부족할까 염려되는데 대부분을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온 나라의 백성들을 다 모아 배양하더라도 진흥시키지 못할까 두려운 상황인데 대부분을 버린단 말입니까? 평민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중인(의원, 역관 등 중간 계급)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입니다. 서관(평안도와 함경도) 사람이 그 중에 버림받은 사람이고, 심도(강화도) 사람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입니다. 관동과 호남 절반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서얼이 그 중에 버림받은 자이고, 북인과 남인은 버린 것은 아니나 버린 것과 같으니, 버리지 않은 자는 오직 문벌 좋은 집안 수십 가호뿐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사건으로 인해 버림을 당한 자가 또한 많습니다.
다산은 신하들과 각 지방의 방백들이 천거한 뛰어난 인재들이 차별 없이 과거를 보게 하는 것을 하나의 방편으로 제시했는데 능력이 뛰어난 자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과거를 보게 해서 차별 없이 등용하자는 제안이었다. 과거에 합격한 자들을 이른바 유력가문 집안과 같이해서 그 자손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청명한 집안이 되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나라의 풍속을 개혁함이 없이 막혀 있는 인재를 진작시키고 답답한 울분을 소통할 것이니 이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지역과 사회적인 계급이나 당파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칠 기회를 주자는 것으로 기회를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구호를 연상케 하는 주장이다. 현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이 주장의 내용을 볼 때 다산의 철학은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날 금수저라는 체념 섞인 유행어가 일상에서도 흔하게 쓰이고, 여전히 특권층이 누리는 갖가지 이권과 특혜가 만연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다산의 이러한 주장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데 다산 역시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많은 것을 받으며 성장했던 사람이었기에 꺼내기 쉽지는 않았던 비판이었을 것이다.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라
위에서 이야기한 과부의 아들이나 다산이 말했던 버림받은 자 등 스스로를 소외된 처지이자 소수이며 약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살아오면 맞닥뜨린 보이지 않는 차별과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 불공정한 처사에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공정이나 기회나 이런 말들은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꾸며낼 수 있는 말들이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여전히 여간해서는 약자가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불공정한 것이 사실인데 만약 그렇게 기울어진 사회를 겪으면서 울분을 넘어 좌절을 느끼고 체념하고 싶은 상황이라면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다산이 어떻게 살아가고 이겨냈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사기에 실린 글귀를 보면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무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글이 있다. 누군가는 편하게 길을 가는데 가시를 꺾고 돌멩이를 골라내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라면 누구나 너무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내준 길 덕분에 내 뒤를 따르는 누군가는 편하게 걸을 것이고, 언젠가 훗날 고개를 돌렸을 때 자신의 등 뒤를 쫓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광경을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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